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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를 전제로 한 건축물 설계 이론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은 안전하고 안정적인 거주를 전제로 설계된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그 반대 방향으로 전개되곤 한다. 기후 변화, 지진, 전쟁, 테러와 같은 위협은 불시에 공간을 붕괴시키고, 거주자의 삶을 뿌리째 흔들어놓는다. 이러한 위기의 시대에, 건축은 단지 아름다움이나 기능성만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파괴 그 자체'를 설계의 일부로 수용하는 새로운 접근이 요구된다. 이 글에서는 파괴를 전제로 한 건축물 설계 이론이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고, 어떤 방식으로 실현되고 있으며, 건축학과 도시계획의 영역에서 어떤 철학적 전환을 불러오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불확실성의 시대, 건축은 무엇을 전제로 해야 하는가?전통적으로 건축은 '오래 남을 것'을 염두에 두고 설계되었다. 유럽의 대성당, 아시아의 고궁, ..
건축의 기능을 벗어난 ‘의미 중심’ 구조물의 설계 건축은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의 생존과 생활을 위한 기능적 틀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건축은 단순한 기능의 껍질을 넘어, 인간의 감정과 집단 기억,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내는 상징체계로 진화하고 있다. 기능을 수반하지 않거나 그 비중이 낮은 ‘의미 중심’의 구조물은 건축이 담을 수 있는 철학적 깊이와 문화적 울림을 드러내는 새로운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글에서는 기능성을 벗어난 의미 중심 건축이 어떻게 설계되고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다층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기능’이라는 전통적 기준의 재고기능주의 건축은 근대 건축의 핵심 이념으로, 목적에 부합하는 공간 구성과 실용적 구조를 우선시해 왔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이후, 이러한 실용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건..
기후위기 시대의 생존형 건축 구조 탐색 기후위기는 더 이상 미래의 문제가 아닌 현재의 현실이다. 점점 더 강력해지는 폭염, 빈번해지는 폭우, 해수면 상승, 에너지 불균형 등은 인간의 생존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이러한 위기 상황 속에서 건축은 단순한 공간 창조의 영역을 넘어, 생존을 위한 실질적인 도구로서의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생존형 건축은 극한 기후로부터 인간을 보호하고, 자원을 절약하며, 위기 상황에서도 자립 가능한 구조를 통해 기후재난 시대의 해법을 모색한다. 이제 건축은 삶의 질을 넘어, 생존 그 자체를 보장해야 하는 시대에 도달했다. 기후위기의 실체와 건축 환경의 변화최근 수십 년간 이산화탄소 농도의 급격한 상승과 함께 평균기온의 상승, 북극 빙하의 감소, 사막화의 가속 등 기후 변화는 전 지구적으로 관측되고 있..
촉각 중심 공간 설계: 시각 약자를 위한 건축학 촉각 중심의 건축 설계는 시각 정보를 우선시해온 기존의 건축학 패러다임을 전복하는 새로운 시도이다. 이 개념은 단순히 시각 장애인을 위한 특수 설계에 머무르지 않고, 모든 사용자가 더 풍부하고 몰입감 있는 공간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감각 중심의 포괄적 디자인 철학으로 확장된다. 특히 시각 약자에게 건축 공간은 단순한 생활의 배경이 아닌 ‘감지해야만 하는 환경’으로 기능하기 때문에, 건축은 더이상 눈에 보이는 외형에 국한되지 않고, 촉감, 온도, 질감, 진동 등의 감각을 통해 기능적이고 정서적인 소통을 이루어야 한다. 본 글에서는 이러한 촉각 중심 건축 설계의 이론적 기초, 실제 적용 사례, 설계 원칙과 기술, 그리고 사회적 함의를 다양한 각도에서 탐색한다. 시각 중심 건축의 한계와 촉각 중심 설계의..
냄새를 설계하는 건축학, 가능한가? 사람은 공간을 단지 시각적으로만 기억하지 않는다. 시각, 청각, 촉각, 미각과 더불어 후각 역시 공간 경험의 중요한 축이다. 특히 냄새는 감정과 기억을 가장 직접적으로 자극하는 감각 중 하나로, 뇌의 편도체 및 해마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따라서 특정 공간에서 맡았던 냄새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강한 인상으로 남으며, 이는 건축에서의 ‘장소성’과도 연결된다. 그렇다면, 공간 설계의 일부로서 ‘냄새’는 의도적으로 조율되고 구성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건축학적으로 냄새를 설계하는 것이 가능한가? 1. 후각과 공간 경험의 인지과학적 연결후각은 뇌의 감정 중추와 가장 가까운 감각으로, 기억과 감정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강력한 작용을 한다. 이는 ‘프루스트 현상(Proust phenomenon)’으로 잘..
빛과 그림자로 건축을 조각하다 건축은 언제나 공간과 재료의 예술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그 속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공간을 형성하고 인식하게 만드는 또 다른 요소가 존재한다. 바로 ‘빛’이다. 빛은 건축의 구조를 드러내고, 감정을 자극하며, 시간의 흐름을 각인시키는 조형적 도구로 기능한다. 그림자는 빛의 반대편에서 조용히 건축을 조각하며, 공간의 깊이와 리듬을 만들어낸다. 이 글은 빛과 그림자가 건축 공간 안에서 어떻게 유기적으로 작용하며 그 자체로 하나의 조형 언어가 되는지를 탐색한다. 1. 빛의 물리적 속성과 건축적 활용빛은 파장과 강도, 색온도에 따라 공간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진다. 자연광은 하루의 시간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며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고, 인공조명은 그 속성을 조절함으로써 원하는 분위기를 연출할..
기억과 장소성: 건축이 추억을 담는 그릇일 수 있는가? 건축은 단순한 기능의 틀을 넘어, 인간의 삶을 담는 그릇이자 시간을 품은 기록물이다. 우리는 특정한 장소에 머물며 사랑을 나누고, 상실을 겪고, 성장의 순간을 마주한다. 그러한 기억은 단순히 시간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그 순간이 일어난 공간 속에 축적된다. 그렇다면 건축은 과연 기억을 담아내는 그릇이 될 수 있을까? 이 글은 건축이 인간의 기억과 어떻게 관계를 맺으며, 장소성과 감정이 어떻게 얽혀 건축에 의미를 부여하는지를 탐구한다. 1. 장소성과 기억의 상호작용: 공간이 기억을 지배하는 방식인간의 기억은 장소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이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개념이 바로 "장소의 기억"(memory of place)이다. 이는 특정 장소에서의 경험이 그 공간 자체에 각인되어, 시간이 지나도 그 장소를..
건축학이 말하는 ‘불편함’의 기능 건축학에서 불편함은 단순한 결핍이 아니라, 인간의 감각을 일깨우고 사회 구조를 성찰하게 만드는 중요한 기능이다. 이 글에서는 공간 속 불편함이 지닌 건축적·사회적 의미를 분석한다. 감각을 일깨우는 장치로서의 불편함건축 공간에서의 ‘불편함’은 종종 사용자에게 부정적인 요소로 인식되지만, 그것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실제로 건축가들은 의도적인 불편함을 통해 인간의 감각을 각성시키고 공간에 대한 인지력을 높이는 전략을 구사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는 주거 공간에 극도의 기능성과 효율성을 추구하면서도, 계단의 높낮이나 창문의 위치에 약간의 불균형을 주어 사용자가 움직임과 시선에 집중하도록 유도했다. 이러한 물리적 감각의 자극은 무심코 소비되는 공간 경험을 의식의 차원으로 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