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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과 삶: 우리가 사는 방식에 대하여

창문이 많은 집에서 배우는 여유의 기술

빛이 스며드는 공간에서 시작된 변화

 

창문이 많은 집에 처음 살아보게 된 건 꽤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부동산 매물 사진에서 빛이 잘 드는 거실을 보고, 무언가 따뜻한 감정을 느꼈다. 햇살이 가득한 집에서 살면 왠지 기분이 좋아질 것 같았고, 이전보다 좀 더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사 첫날, 아직 짐을 다 풀지 않은 거실 바닥에 앉아 조용히 벽을 바라보았다. 오전 햇살이 천천히 벽을 타고 흘러가고 있었고, 그 장면을 보고 있자니 알 수 없는 안정감이 나를 감쌌다. 그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 공간이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 것은. 처음엔 채광이 좋아서 좋았고, 환기가 잘 되어서 건강에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창문이 많은 이 집은 나의 삶을 구조부터 바꾸기 시작했다. 마치 내가 매일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다시 배워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 조용한 공간은 나를 바꾸고 있었다.

 

창문이 많은 집에서 배우는 여유의 기술

아침 햇살이 하루의 템포를 바꾸다

 

아침은 예전과 다르게 시작된다. 자명종이 울리기 전, 내 눈은 이미 떠져 있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빛 때문이다. 창문을 통해 천천히 스며드는 햇살이 이불 끝자락을 간질이기 시작하면, 몸은 자연스럽게 깨어난다. 눈을 뜨지 않아도 그 따스함은 느껴지고, 그 기운은 마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듯 오늘 하루를 부드럽게 시작하게 만든다. 전에는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려 형광등을 켜야만 했던 나였는데, 지금은 빛에 의해, 자연에 의해 하루를 여는 사람이 되어 있다. 이 변화는 단지 기분의 문제가 아니다. 나의 생체 리듬이 바뀌고, 정신의 각성 방식까지 달라진 것이다. 더는 억지로 하루를 시작하지 않는다. 나를 깨우는 건 기계가 아니라 햇살이고, 그런 하루는 시작부터 여유롭다.

 

바람이 지나가는 길, 사유가 흐르는 시간

 

창문이 많다는 건 단순히 햇살이 많다는 뜻이 아니다. 이 집을 살면서 진짜 크게 체감한 건바람의 흐름이다.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창을 통해 집안을 순환하고 있다는 걸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아침에 주방 창을 열면, 거실을 지나 침실 쪽으로 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커튼이 가볍게 흔들리고, 공기의 흐름 속에서 나는 내 숨결도 가볍게 정리되는 느낌을 받는다. 환기가 잘 된다는 차원을 넘어, 공기의 흐름이 공간을 청소하고 감정을 정돈해주는 듯한 감각이다. 어느 날 오후, 글을 쓰던 도중 머릿속이 꽉 막힌 듯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펜을 내려놓고 창문을 열었다. 그 순간 느껴지는 바람 한 줄기가 내 이마에 닿을 때, 무엇인가 가볍게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생각이 돌아왔고, 감정의 묵직함이 사라졌다. 바람은 내 생각을 환기시키는 조용한 대화 상대 같았다.

 

창을 통해 외부와 연결되는 내면

 

창을 통해 보이는 바깥 풍경은 또 다른 형태의 자극을 준다. 내 방의 창문은 골목길을 향하고 있는데, 매일 아침 아이들이 등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짧은 풍경이 주는 활력은 꽤 크다. 어느 날은 우산을 나눠 쓰며 가는 아이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고, 또 어떤 날은 혼자 걷는 아이의 굳은 표정에서 왠지 모를 책임감이 느껴졌다. 집 안에 있지만, 나는 끊임없이 외부와 연결되어 있었다. 창문은 세상과 나를 연결하는 작은 통로이고, 그 통로를 통해 삶은 더 이상 고립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연결 덕분에 나는 나만의 리듬을 유지하면서도 세상과 공존하고 있다는 감각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이런 감정은 문을 닫은 방에서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창이 있다는 것, 그 창이 많다는 것은 내 삶이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는 상징처럼 느껴진다.

 

공간이 나를 바꾸고 삶을 재구성하다

 

사람은 공간에 영향을 받는다. 이 집에 살기 전에는 그런 말을 단순한 인테리어 개념 정도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지금은 확신한다.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삶을 구성하는 적극적인 요소이고, 그 구조가 사람의 생각과 감정, 행동까지도 바꾼다. 창문이 많다는 것, 빛과 바람이 드나든다는 것은 곧 마음의 통로가 열려 있다는 뜻이다. 이 집에 오고 나서 나는 불필요한 물건을 줄이기 시작했고, 스스로 시간을 조율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정리되지 않은 삶은 어지럽게 느껴졌지만, 창밖 풍경은 늘 일정하게 변주되며 나를 안정시켰다. 공간이 조용히 가르쳐준여유는 따로 시간을 내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그저 그 안에 머물기만 해도 되는 감각이었다.

 

여유는 먼 데 있지 않았다

 

살면서 여유를 갖는 법을 일부러 배워야 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빠르게 움직이는 사회 속에서 여유는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그 빈자리를 메꾸는 건 언제나 피로였다. 창문이 많은 집은 그런 내게 삶의 기본값을 바꾸는 연습을 시켜주었다. 이곳에 살며 나는 느렸다. 느렸지만, 그 느림 속에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햇살, 바람, 소리, 그림자, 그리고 나의 감정까지. 이 모든 것들이 내 안에서 동시에 흐를 수 있는 건, 공간이 나를 그렇게 받아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유는 어쩌면 선택이 아니라 환경이 만드는 필연일지도 모른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빛 한 줄기, 그 빛에 반응한 내 몸과 마음, 그 순간들이 모여 여유라는 감각을 만들어낸다.

 

지금 이 자리, 이미 충분한 여유의 한가운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창밖에서는 나뭇잎이 흔들리고 있다. 바람이 머물다 가고, 그림자가 벽을 따라 움직이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그 안에서 나는 충분히 존재하고 있다. 창문이 많은 집은 나에게 삶을 바라보는 다른 각도를 가르쳐주었고, 그 안에서 나는 삶의 속도와 리듬을 재조율하게 되었다. 여유는 먼 곳에서 오는 게 아니다. 지금 이 자리, 이 공간에서 조용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