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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스리랑카의 건축 걸작, 시기리야 요새의 역사적 배경

시기리야(Sigiriya) 요새는 스리랑카 중부 마타레(Matagalle) 지역의 평원 위에 우뚝 솟은 200미터 높이의 바위산 위에 세워진 고대 건축물로, 약 5세기 경 카샤파 1세(Kashyapa I)의 지시에 따라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단순한 방어 요새를 넘어, 왕궁과 정원, 수로, 회화, 상수도 시스템이 통합된 복합적인 구조를 갖춘 고대 도시였다.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곳은 단순한 유적지를 넘어, 고대 남아시아 건축기술이 도달한 정점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동안 시기리야는 주로 정치적 배경과 예술적 가치에 초점이 맞춰져 왔지만, 최근에는 그 안에 숨어 있는 건축 기술과 과학적 설계가 재조명되고 있다. 스리랑카 고고학국과 옥스퍼드 대학교 등의 공동 연구에 따르면, 시기리야는 단순한 방어 목적을 넘어서, 궁전과 정원, 수로망, 벽화 예술, 상수도 설비까지 유기적으로 결합된 고대 도시로 기능했다.

 

시기리야는 인도 아잔타 동굴이나 앙코르와트처럼 종교적 기능을 중심으로 설계된 것이 아니라, 정치적 권위를 강화하기 위한 상징적 공간이었다는 점에서 건축적 의미가 더욱 크다. 카샤파 왕은 쿠데타로 왕위를 차지한 이후 정통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고, 이를 위해 당시 최고의 기술자와 예술가를 모아 자연의 정점에 '인공의 질서'를 부여한 것이다. 특히 시기리야는 자연 암석 위에 인공적으로 조경된 정원과 궁전을 얹은 독특한 구조로, 전통적인 남아시아 사원건축과는 다른 맥락을 보여준다.

 

즉, 시기리야는 단순한 권력의 과시가 아니라, 고대 기술력과 미학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도시 개념’을 창조한 실험적 시도였다. 그 결과 이 요새는 약 1,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구조물 대부분이 무너지지 않고 견고하게 남아 있다.

 

스리랑카 시기리야 요새의 숨은 건축 기술

자연지형을 극복한 입지 선정과 구조물 배치의 전략

시기리야는 바위산 꼭대기에 세워진 요새로, 입지 자체가 매우 극단적이다. 일반적으로 건축은 평지에 기반을 두고 확장하지만, 시기리야는 200미터 높이의 거대한 현무암 기둥 위에 왕궁을 지었다. 이러한 입지 선택은 방어에만 국한되지 않고, 기후 환경에 적응하는 과학적 전략으로도 작용했다. 연구에 따르면 이 바위는 태양의 위치에 따라 음영이 뚜렷하게 생기며, 건물의 자연 채광과 온도 조절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러한 입지 선택은 단순한 자연적 방어를 넘어서 ‘기후 반응형 건축’이라는 개념에 부합하며, 오늘날의 지속가능한 건축 개념과도 일맥상통한다.

 

또한 시기리야의 구조물 배치는 수학적으로 설계된 동서남북 정렬을 따르고 있으며, 남쪽 사면에는 대형 벽화가 그려진 공간이 배치되었고, 북쪽 사면은 궁전으로 오르는 주요 진입로 역할을 수행했다. 동쪽에는 계단과 물 저장소가, 서쪽에는 대규모 정원이 배치되어 있다. 이처럼 정밀한 동선 설계는 단순한 미적 기준이 아니라, 바람의 방향, 물의 흐름, 햇빛의 각도까지 고려한 과학적 배치였다. 고고학적 발굴 결과, 시기리야의 각 구조물은 바위 자체의 균열과 형태를 분석해 '지형 최적화 방식'으로 설계되었으며, 이는 건축 구조물의 내구성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특히 현재까지도 무너지지 않은 계단 구조와 기반 암반의 절단 방식은 당시의 정교한 암석 절단 기술과 지질학적 이해 수준을 잘 보여준다.

 

시기리야 정원의 수리 시스템과 고대 배수 기술

시기리야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바로 정원 시스템이다. 이곳의 정원은 단순히 식물이 있는 공간이 아니라, 물의 흐름을 중심으로 설계된 ‘수(水)의 정원’이다. 스리랑카 고대 문명은 몬순에 의존한 농업 중심 사회였으며, 시기리야는 그 정점에서 가장 정교한 물 관리 시스템을 구현했다. 시기리야 정원에는 인공 연못, 계단식 수로, 석조 수압 파이프, 물길 제어장치 등이 남아 있으며, 이는 현대식 펌프 없이도 자연 중력을 활용해 바위산 위까지 물을 끌어올릴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되었다.

 

특히 수로 시스템은 스리랑카 고고학국의 실측 결과, 바위산 중턱까지 이어지는 암석에 파인 도관(암석 파이프라인)을 통해 구성되었으며, 물의 흐름을 계절에 따라 자동으로 조절하는 배수구조도 포함되어 있다. 수로 시스템은 단순한 배수에 그치지 않고, 공간 내부의 온도를 낮추고 습도를 조절하는 기능까지 수행했다. 고대 수압 기술의 대표 사례로, ‘정수압 원리’가 반영된 설계였다. 연구자들은 이 구조가 물의 낙차와 기압 차이를 이용해 물을 자연적으로 순환시켰다고 분석하며, 연구자들 중 일부는 이 구조가 고대 로마의 수로망보다도 정밀하고 과학적인 설계라고 분석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도 일부 구조는 계절에 따라 물이 흐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는 시기리야 기술이 단순한 고대 유산이 아니라 지속가능성을 내포한 과학적 설계임을 입증한다.

 

시기리야 벽화와 거울의 벽이 구현한 음향 및 시각 기술

시기리야에서 가장 유명한 구조 중 하나는 바위 중턱에 위치한 '거울의 벽(Mirror Wall)'이다. 이 벽은 석회와 계피수액, 식물성 수지를 혼합하여 광택을 낸 벽으로, 고대에는 마치 진짜 거울처럼 사람의 모습을 비췄다고 전해진다. 이 벽은 단순히 장식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발생한 소리를 반사시켜 공간 전체에 울려 퍼지게 만드는 음향 장치로 기능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일부 고고음향학 연구에서는 이 벽이 특정 음역대의 소리를 증폭시키거나, 특정 공간에서 울림을 극대화시키는 구조임을 밝혀냈다.

 

또한 거울의 벽은 벽화의 일부 역할도 했다. 바위 틈새에 그려진 여성상 벽화들은 풍속에 의해 보호되며, 특수한 채색 기법을 통해 약 1,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선명한 색감을 유지하고 있다. 벽화 제작에는 광물성 안료와 식물성 바인더가 사용되었으며, 이는 당시 사람들이 색의 발색 원리와 보존성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벽화는 당시 미적 기준을 넘어 왕권의 이상적 여성상을 표현하며, 공간 배치와 빛의 방향을 고려한 구성으로 감상 효과를 극대화했다. 즉, 시기리야의 벽화와 거울의 벽은 단순한 예술 작품이 아니라, 건축 공간의 기능성과 감성적 요소가 결합된 ‘융합 설계’의 산물이다.

 

고대 기술의 현대적 의의와 지속 가능한 설계의 원형

시기리야는 오늘날 지속 가능한 건축과 생태 건축의 원형으로도 주목받는다. 5세기경 건축물임에도 불구하고, 지형 적응성, 자연 환기 시스템, 중력 기반 수로 구조, 태양광 활용 설계 등은 현대 친환경 건축의 핵심 요소와 밀접한 유사성을 보인다. 특히 최근 건축학계에서는 시기리야의 설계를 ‘패시브 디자인(Passive Design)’의 원조로 보고 있으며, 자연 조건을 최대한 활용하여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는 개념이 이미 이 고대 요새에 내재되어 있었다고 분석한다.

 

건축사 연구자들은 시기리야의 기술이 단절되지 않고 전해져, 이후 불교 사원이나 정원은 물론 식민지 시대 유럽풍 건축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스리랑카 남부 칸디(Kandy) 지역의 불치사(Temple of the Tooth) 정원 구조는 시기리야의 정원 개념을 계승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또한 시기리야의 구조적 원리는 현대 스리랑카 정부의 생태도시 조성 정책에서도 자주 인용되며, 역사적 유산이 단지 과거의 유물이 아닌, 오늘날 도시 설계와 환경 정책의 영감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크다.

 

시기리야는 과거의 유산에 머무르지 않고, 오랜 세월을 지나 오늘날까지 생명력을 생명력을 간직한 지혜의 산물이며, 앞으로의 건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생동하는 교본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