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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와 조화를 이루는 건축: 방글라데시 전통 토분의 탄생

방글라데시는 열대 몬순 기후에 속하는 나라로, 연중 기온이 높고 강우량이 많은 특징을 지닌다. 특히 여름철에는 고온다습한 환경과 함께 집중호우가 자주 발생하는데, 이러한 자연조건은 전통 주거 형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왔다. 수세기 동안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자연환경에 적응하면서도 효율적인 주거 공간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건축 기술을 발전시켜 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흙으로 만든 전통 가옥, ‘토분(mud house)’이다.

 

토분은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흙, 볏짚, 가축 분뇨, 대나무, 야자나무 잎 등을 주재료로 하여 벽체와 지붕을 구성한다. 이러한 방식은 공장에서 생산된 자재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건축 과정에서 탄소 배출이 거의 없으며, 자원의 순환성 측면에서도 매우 우수하다. 흙과 식물성 자재는 생분해가 가능하며, 건축 해체 후에도 별도의 폐기물 처리 과정 없이 자연으로 되돌아간다. 이러한 특징은 토분 건축이 단순히 오래된 방식이라는 인식을 넘어, 오늘날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음을 보여준다.

 

토분의 역사는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방글라데시 지역의 고고학 발굴 조사에 따르면, 기원전 2000년 무렵부터 진흙과 짚을 혼합하여 만든 주거지가 존재했으며, 이들 주거 구조물은 오늘날의 토분 형태와 유사한 특성을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당시에도 흙벽의 단열성과 열 저장 능력을 활용하여 실내 온도를 조절하고, 자연 환기를 극대화한 구조가 사용되었음이 드러났다. 이는 현대 건축이 추구하는 ‘패시브 디자인’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방글라데시의 전통 건축은 이렇게 과거로부터 이어진 지혜를 바탕으로 기후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해 온 삶의 흔적이라 할 수 있다.

 

방글라데시 전통 토분 건축의 지속가능성

지속가능한 자재와 생태 순환의 구조

방글라데시의 전통 토분은 자연 자재의 활용이라는 점에서 현대의 지속가능 건축 개념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주로 사용되는 흙은 현장에서 바로 채취되며, 별도의 가공 과정 없이 건축 재료로 사용된다. 이러한 방식은 생산 및 운송 과정에서의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고, 자연 상태 그대로의 자재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순환 구조를 형성한다. 볏짚과 가축 분뇨는 흙과 혼합되어 결합력을 높이는 역할을 하며, 대나무는 지붕 골조나 벽체 보강재로 사용되어 전체 구조의 안정성을 높인다.

 

특히 대나무는 방글라데시의 생태 환경에 매우 적합한 재료로 평가받는다. 연 1~2미터 이상 자랄 정도로 성장 속도가 빠르고, 인장강도도 우수하여 구조체로서 충분한 역할을 한다. 현대 재료처럼 생산 과정에서 화학물질이 투입되지 않기 때문에 건강에 해롭지 않으며, 건축 후에는 습기 조절에도 효과를 발휘한다. 이러한 재료들은 주로 지역 주민들이 자급자족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확보되며, 건축의 자립성과 지속 가능성을 동시에 만족시킨다.

 

방글라데시 국립주택청(National Housing Authority)은 전통 방식으로 지어진 토분 주택은 적절한 관리와 보수를 전제로 평균 25년 이상 사용이 가능하다고 했다. 특히 흙벽의 열질량(thermal mass)은 매우 높아, 여름철 외부 온도가 35도 이상으로 올라가더라도 실내 온도는 그보다 6도에서 8도 가량 낮게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러한 자연적인 온도 조절 효과는 냉방 장치 없이도 거주자의 쾌적성을 확보할 수 있게 하며, 에너지 소비를 크게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이 모든 자재와 기술이 현지 주민의 손으로 실행 가능하다는 것이다. 외부 전문가나 고비용 장비 없이도 건축이 가능하다는 점은 개발도상국에서의 적용 가능성을 높여준다. 자연 자재의 순환성과 더불어 지역사회 자립성까지 함께 고려할 때, 토분은 지속가능 건축의 전형적인 사례로 손색이 없다. 이러한 전통 기술은 오늘날의 친환경 건축에서 배워야 할 중요한 교훈을 담고 있다.

현대 도시화와의 충돌, 그리고 부활의 움직임

20세기 중반 이후 방글라데시는 본격적인 도시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특히 수도 다카(Dhaka)와 같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현대식 건축물이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토분은 점차 주변부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시멘트, 철근, 콘크리트 블록과 같은 공장 생산 자재는 시공 속도와 구조적 안정성 면에서 유리했지만, 에너지 소비와 탄소 배출 면에서는 상당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도시화는 생활의 편리함을 제공했지만, 동시에 수천 년 동안 이어져온 지역 고유의 건축 지혜가 사라질 위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건축 방식의 변화를 넘어서 문화의 단절을 의미하기도 한다. 많은 젊은 세대는 흙집을 낡고 후진적인 방식으로 인식하며, 콘크리트 건물을 선호하게 되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 그리고 생태환경 파괴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전통 토분에 대한 재조명이 다시 이루어지고 있다. 다카대학교 건축학부는 토분 복원과 재활용을 교육 과정에 포함시키며, 지역 건축의 정체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커리큘럼을 운영하고 있다.

 

NGO 단체인 BRAC는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지 개선 프로젝트에서 토분을 현대 기술과 결합한 하이브리드 주택 모델을 실험하고 있다. 예를 들어, 흙벽체를 바탕으로 철근 콘크리트 기초를 병용하거나,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에너지 자립을 실현하는 방식이 그 예다. 이는 단순히 과거의 재현이 아니라,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려는 노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실제로 이러한 하이브리드 토분 주택은 탄소 배출량을 크게 줄이면서도, 강풍이나 습기에 대한 저항력을 확보한 사례로 학계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재난 저항성과 공동체 회복력의 측면에서 본 토분

방글라데시는 지리적 특성상 매년 홍수, 태풍, 지진 등 다양한 자연재해에 노출되어 있는 나라다. 이러한 조건은 주거지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치며, 건축의 안전성과 회복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전통 토분은 강한 충격에도 벽 전체가 붕괴되기보다는 점진적으로 갈라지거나 무너지는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인명 피해를 최소화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무거운 철근 구조물보다 재난 시 복구가 빠르고 비용이 적게 든다는 장점도 있다.

 

2018년 국제재난저감전략기구(UNDRR)는 방글라데시 내 일부 지역의 토분 주택에 대나무 보강재를 접목해 실험한 결과, 일반적인 홍수와 강풍에도 구조적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음을 발표했다. 특히 대나무와 같은 유연성이 높은 재료는 진동이나 충격을 분산시키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에 지진 저항성까지 향상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전통 건축이 단지 옛 방식에 그치지 않고, 오늘날의 재난 대응 전략으로 충분히 기능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더불어 토분 건축은 지역 공동체의 협업을 통해 지어진다는 점에서 사회적 회복력 강화에도 이바지한다. 과거부터 방글라데시에서는 '바와르'(bawaar)라 불리는 공동 노동 문화가 존재했고, 이는 가구당 건축뿐 아니라 마을 전체의 유대감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건축 행위가 공동체 내부의 소통과 협력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만큼, 자연재해 이후 재건 과정에서도 주민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된다. 이는 외부 구조적 지원에 의존하지 않고도 스스로 복원력을 갖는 지역사회의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교훈: 전통과 현대의 조화

방글라데시의 토분 건축은 단순한 전통 양식을 넘어, 생태계와 인간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노력의 결과물이다. 특히 이 건축 양식은 지역 자원의 활용, 자연 에너지의 이용, 생분해성 재료의 순환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현대의 친환경 건축과 동일한 방향성을 지니고 있다. 흙, 대나무, 볏짚 같은 재료는 오늘날에도 쉽게 구할 수 있으며, 이들을 활용한 건축은 탄소 발자국을 줄이는 데 큰 효과를 발휘한다.

 

세계녹색건축협의회(World Green Building Council)는 2022년 보고서를 통해, 전통 건축에서 얻은 교훈이 현대 도시 설계에 적용될 수 있음을 강조한 바 있다. 방글라데시 정부 역시 2021년 ‘국가 지속가능 건축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지역 자재의 활용과 에너지 자립형 주택 모델을 권장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적 뒷받침은 토분을 단지 문화유산으로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주거 대안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준다.

 

우리는 이제 과거의 전통에서 미래를 위한 해법을 찾아야 할 시점에 있다. 기후 위기와 에너지 고갈의 시대에 방글라데시의 전통 토분은 환경과 인간의 지속가능한 공존을 위한 훌륭한 사례다. 앞으로도 이러한 전통 건축이 단절되지 않고 현대적 기술과 결합되어 발전해 나가길 기대한다. 흙으로 지은 집이야말로, 가장 미래지향적인 집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