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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

시안 병마용 피라미드와 도시축의 숨은 상관관계

시안 병마용과 진시황릉 피라미드는 단순한 고분군이 아니다. 이 거대한 구조물들은 시안 도심을 관통하는 축선과 정밀하게 연계되어 있으며, 권력, 우주, 도시 설계 철학이 하나로 얽힌 고대 제국의 정교한 공간 전략을 보여준다.

 

시안 병마용 피라미드와 도시축의 숨은 상관관계

 

제국의 시작, 시안이라는 도시의 상징성

중국 서북부에 위치한 시안(西安)은 진시황이 통일 제국을 세운 수도이자, 이후 한·당 시대를 거쳐 동서 문명이 교차하는 실크로드의 기점이기도 했다. 특히 진시황의 능묘와 그 주변 병마용은 단순한 고분군이 아니라, 시안이라는 도시 공간의 기원점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도시의 공간 구조는 인간의 삶의 질서를 반영함과 동시에, 통치 이데올로기의 물리적 표현이라는 의미를 갖는데, 시안은 이러한 도시와 제국 권력의 관계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다. 병마용과 진시황릉은 도시 외곽에 따로 존재하는 독립된 공간이 아니라, 도시 중심축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고대 중국의 공간적 사유를 반영하고 있다.

 

병마용은 단순한 무덤의 부속물이 아니다

1974년 처음 발굴된 병마용은 진시황릉 동쪽 1.5km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8,000여 개에 달하는 실물 크기의 병사와 마차, 말 조각상이 질서정연하게 배치되어 있다. 이 배열은 단순한 매장 문화의 산물이 아니라, 당시 제국의 군사 조직 체계와 왕권 수호 사상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병마용은 진시황릉 본체를 지키는 군사적 방어선인 동시에, 상징적으로는 황제 권력의 전방위적 통제를 나타내는 시각적 장치이다. 그러나 이 배치는 우연이 아니라, 시안 도시 중심축과의 연계를 염두에 두고 기획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고대 제국의 무덤이 단순히 과거를 기념하는 공간이 아니라, 도시 전체와의 통합 구조 속에서 기능했다는 점을 시사한다.

 

진시황릉과 병마용, 그리고 도시 중심축의 배치 원리

진시황릉은 시안 동쪽 외곽에 위치하며, 정남북 방향으로 정렬된 거대한 피라미드형 토분이다. 이 릉은 단일 구조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병마용을 포함한 수많은 부속 시설들과 함께 하나의 복합적 공간 축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진시황릉과 병마용은 정확히 시안 도심의 동서 방향 축과 일직선상에 놓여 있으며, 이는 고대 중국 도시 설계에서 중시한 '정중앙의 축선(轴线)' 개념과 깊은 관련이 있다. 도시는 궁성(宮城)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과 축선 정렬을 중시했으며, 이러한 공간 인식은 궁궐뿐 아니라 사후 세계를 준비하는 황제릉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 병마용과 릉은 사후에도 황제가 도심 중심축의 지배자로 남고자 한 의도가 반영된 배치였다.

 

도시 설계와 우주관: '천원지방(地方)' 사상의 적용

고대 중국의 도시 설계는천원지방(地方)’이라는 사상, 즉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세계관에 기반하였다. 이러한 우주론은 단지 상징에 그치지 않고, 실제 공간 구조와 배치에도 깊이 관여하였다. 진시황릉과 병마용, 그리고 시안 도심의 구성은 이러한 철학을 물리적 공간으로 치환한 결과물이다. 릉 자체는 정방형 평면을 바탕으로 축대와 피라미드형 토분이 결합된 구조이며, 병마용은 그 동측에서 하나의 방어선 또는 확장된 축의 역할을 수행한다. 도시 중심에서 릉까지 이어지는 축선은 하늘과 지상, 인간과 신의 질서를 연결하는 통로로 간주되었고, 병마용은 그 통로의 군사적 수호자이자 상징적 전위로 기능했다.

 

병마용의 배치 방향과 도시 방위 체계

병마용의 세 개 주요 갱도는 모두 동쪽을 향해 있다. 이는 단순한 지형 조건을 따른 결과가 아니라, 의도적인 방향 선택으로 해석된다. 고대 중국에서는 동쪽이 생명과 출발의 방향이며, 동시에 외부 세계가 시작되는 공간이었다. 이러한 방향 배치는 진시황릉과 시안 도심의 관계를 동서 축선 위에 고정시키는 효과를 갖는다. 병마용의 방향은 곧 도시로 향한 시선이자, 중앙에서 외부를 바라보는 권력의 시선을 반영한 것이다. 이를 통해 병마용은 물리적으로는 릉을 지키는 기능을 수행하면서도, 상징적으로는 도시 축선을 보완하고 확장하는 건축적 장치가 된다.

 

피라미드형 릉과 도시 스카이라인의 연계

진시황릉은 그 외형이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를 연상케 할 만큼 정연한 형태를 갖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그 위용은 시안 평야에서 두드러진 지형적 상징으로 기능한다. 이는 도시 전체에서 바라보는 시야의 중심축을 형성하며, 마치 현대 도시에서 시청이나 광장, 기념비가 도심 구조를 정렬하는 기준점이 되는 것과 유사하다. 진시황릉은 단지 황제의 무덤이 아니라, 도시 전체의 시각적 구심점이자 공간적 중심축을 강화하는 기능을 수행했다. 이는 고대 중국이 이미 도시 설계에서 경관, 권력, 축선의 개념을 통합적으로 고려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병마용과 릉의 거리, 상징적 거리감의 기획

진시황릉과 병마용은 1.5km의 거리를 두고 배치되어 있으며, 이 거리는 단지 방어적 목적만으로 설정된 것이 아니다. 당시 기술력으로는 이 정도 거리를 통해 시각적 연결성과 동시에 독립된 성역(聖域)의 감각을 유지할 수 있었다. 병마용은 릉의 외곽 방어 기능을 갖지만, 동시에 도심에서 릉으로 향하는 물리적 축선 위의 첫 관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거리 설정은 물리적 방위선인 동시에, 상징적 권력의 단계적 접근을 계획한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고대 권력 공간이 단절과 연결, 시야와 의미, 기능과 상징의 복합적 장치로 구성되었음을 보여준다.

 

도시계획과 무덤 건축의 일체화 전략

고대 중국에서는 무덤이 도시 외곽에 분리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시 축선과 권력 구조의 일부로 통합되는 경우가 많았다. 진시황릉과 병마용은 이러한 일체화 전략의 대표적인 예로, 왕이 죽은 이후에도 자신의 도시 통치 권한을 유지하고자 한 의도가 공간적으로 구현된 것이다. 특히 릉이 도시의 동쪽에 위치해 있다는 점은, 고대 도시가 미래와 태양, 생명의 방향을 향해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병마용은 그러한 확장선을 따라 자리잡아 도시 확장의 정당성과 황제 권위의 지속성을 공간적으로 표현한다.

 

현대 도시와의 연결성: 시안의 확장과 유산 보존

오늘날의 시안은 고대 제국의 도시 구조를 계승하면서도, 현대적 기능과 인프라를 결합한 도시로 발전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현대 도시계획에서도 과거의 중심축 개념이 여전히 유지된다는 점이다. 시안은 고대 장안성의 중앙축을 기준으로 도로, 철도, 도시개발이 설계되고 있으며, 진시황릉과 병마용은 도시 외곽 보존 구역으로 엄격히 관리된다. 이는 고대 축선 구조가 단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도시 정체성과 공간 전략의 핵심 틀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병마용과 도시축은 권력 공간의 설계자산

진시황릉과 병마용은 단지 고대 유적이 아니라, 제국 권력의 공간 전략을 현대에 전하는 실증적 자료다. 이들은 시안이라는 도시의 축선 속에 유기적으로 자리잡음으로써, 권력, 우주, 인간, 도시의 관계를 공간적으로 설계한 첫 시도 중 하나로 평가받을 수 있다. 병마용이 단지 조각의 집합체가 아니라 도시 설계의 전위적 장치라는 점에서, 이는 고대 중국이 가진 건축 철학과 정치 이데올로기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