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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

유럽 성당 건축에서 찾아볼 수 있는 상징 5가지

유럽의 성당은 단순한 종교 공간을 넘어선 예술, 철학, 과학, 영성의 총체적 결정체다. 석재 하나하나에 새겨진 조각, 정교한 아치의 곡선,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첨탑은 수세기 동안 이어진 인류의 신앙과 사고의 흔적이며, 그 자체로 하나의 상징 체계다. 특히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를 중심으로 지어진 성당 건축물들은 시각적 미감을 넘어서 신학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으며, 각 요소들은 의도된 상징성을 지닌다. 이 글에서는 유럽 성당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다섯 가지 주요 상징들을 고찰하며, 그 건축적 표현이 인간 정신과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를 탐색한다.

 

유럽 성당 건축에서 찾아볼 수 있는 상징 5가지

 

1. 수직 상승하는 구조하늘을 향한 인간의 갈망

중세의 고딕 성당을 마주할 때 시선을 압도하는 것은 곧게 솟은 첨탑과 날렵하게 상승하는 아치 구조다. 이러한 수직적 상승은 단순히 구조물의 위용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인간의 시선과 의식을 천상으로 이끄는 상징적 장치로 설계되었다. 성당의 첨탑은 인간이 감각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하늘, 곧 신의 영역과 연결되는 통로이며, 이는 곧 신에게 다가가려는 인간의 갈망이 건축적으로 구현된 결과물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프랑스의 아미앵 대성당이나 독일의 울름 대성당을 들 수 있다. 이 성당들은 높이가 150미터를 넘는 첨탑을 갖추고 있으며, 내부 공간 또한 천장이 매우 높아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게 만든다. 이러한 구조는 단지 기술적 도전의 결과가 아니라, 신학적·철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탄생한 것이었다. 특히 중세 후기에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신플라톤주의 철학이 다시 주목받았고, 고귀한 것은 위에 있다는 위계질서의 개념이 성당 구조에도 적용되었다.

 

더불어 수직 구조는 빛을 위에서 아래로 유입시키는 방식과도 맞닿아 있다. 높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은 인간이 '위로부터 주어지는 계시'를 받아들이는 존재임을 시각적으로 체험하게 하며, 이러한 건축은 인간이 하늘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한다는 신학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따라서 수직성은 단순한 공간적 선택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상승과 영혼의 구원을 향한 여정을 시각적으로 상징하는 중요한 건축적 언어다.

 

2. 십자형 평면구속과 구원의 이중 구조

유럽의 대다수 성당은 위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라틴 십자가 형태를 이룬다. 이 평면 구조는 단지 건축적 효율이나 전통의 반복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핵심 서사를 시공간 안에 새겨 넣은 장치다. 중심 회랑인 '네이브(nave)'는 신자들이 행진하듯 걸어가는 구원의 길이며, 양쪽의 날개인 '트랜셉트(transept)'는 예수 그리스도의 팔을 상징한다. 결과적으로 성당은 하나의 거대한 십자가, '구속의 기호'로 설계된 것이다.

 

이 평면 구조는 내부에서 경험되는 움직임에도 깊은 상징을 부여한다. 성당에 들어선 신자는 입구에서 제단까지 직선으로 걸어가며, 자연스럽게 십자가의 중심을 통과하게 된다. 이는 곧 인간이 구원의 길 위를 걷고 있으며, 신의 구속 아래 놓여 있다는 상징적 체험을 의미한다. 더욱이 이러한 평면 구성이 공간 안에서 의례의 순서와 흐름까지 규정짓는다.

 

중앙 교차점에 위치한 제단은 십자가의 교차 부위에 해당하며, 예수의 희생이 극적으로 이루어진 지점을 상징한다. 성찬식이나 고해성사 등 성례전이 이 지점에서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이러한 신학적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심지어 건축가는 건물의 축선 방향까지 고려하여, 십자가의 긴쪽이 동서로, 짧은 쪽이 남북으로 배치되도록 설계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태양이 떠오르는 동쪽을 부활의 상징으로 인식한 기독교의 사유 구조를 공간화한 예시다.

 

3. 빛의 연출신의 현현을 시각화하다

고딕 성당의 내면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것은 공간을 가득 채우는 색채의 빛이다. 이러한 빛은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내부로 유입되며, 단순한 조명 효과를 넘어선 영적 경험을 창출한다. 중세인들에게 있어 빛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닌 신의 속성이었다. ‘빛은 신이며, 신은 빛 안에 계신다는 신학적 인식은 고딕 건축의 핵심 개념이 되었고, 스테인드글라스는 그 구현체로 자리잡았다.

 

빛은 고정된 물질이 아닌, 시간에 따라 변하는 유기적 존재다. 성당의 창을 통해 유입된 빛은 시시각각 변하며, 그 속에서 신자는 신비와 은총, 계시의 경험을 감각적으로 받아들인다. 스테인드글라스에는 성경의 장면, 성인의 삶, 신화적 이야기들이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으며, 이는 읽을 수 없는 다수의 신자들에게 시각적 성경 역할을 했다.

 

대표적으로 샤르트르 대성당의 창문은 '샤르트르 블루'라 불리는 짙은 청색 유리를 사용하여 빛의 깊이를 극대화했다. 이 색은 당시 다른 성당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색감으로, 천상의 영역을 시각적으로 암시하며, 현실과 이상의 경계를 허물었다. 이처럼 빛은 성당 내부에서 신성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신의 존재를 감각적으로 체험하게 만드는 핵심 상징으로 작용했다.

 

4. 문과 조각상구원과 심판의 문턱

유럽 성당의 정문은 단순한 출입 통로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극적 무대이자 신과 인간의 경계, 구속과 구원의 문턱을 상징한다. 특히 고딕 성당의 입구에는 최후의 심판, 천국과 지옥, 덕과 죄악의 이야기들이 수백 개의 조각상으로 새겨져 있다. 이 조각들은 문을 통과하기 전, 인간 존재가 신의 법 앞에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상기시키는 시각적 고백의 도구였다.

 

문은 고대부터 공간의 전이, '다른 세계로의 진입'을 의미하는 상징이었다. 성당의 정문은 세속에서 신성으로, 물질에서 영으로 넘어가는 지점이며, 이 문을 통과하는 행위는 단순한 출입이 아니라 신과의 만남을 준비하는 예식적 행위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문 위에 배치된 심판의 장면은 성당에 들어서는 자가 단순한 관람객이 아니라, 심판받는 자임을 각인시키기 위한 상징적 장치였다.

 

예를 들어,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서쪽 정문에는 최후의 심판 장면이 입체적으로 조각되어 있으며, 그 중심에는 예수가 심판자로서 앉아 있고, 좌우에는 천사와 악마가 인간의 영혼을 저울질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이와 같은 구성은 단순히 장식이 아니라, 성당 입장 전 인간의 도덕적 자기 성찰을 요구하는 설계상의 메시지다.

 

또한 정문은 종종 삼중 아치 형태로 구성되며, 이는 삼위일체를 상징함과 동시에 신성한 질서의 반복 구조를 표현한다. 문 위의 '티망팡(Tympanum)'은 성경적 메시지와 도덕적 교훈이 새겨지는 공간이며, 이를 바라보며 성당에 들어가는 행위는 곧 신성한 공간으로의 참여 선언이 된다.

 

5. 숫자의 상징신성한 질서의 암호

유럽 성당의 건축적 구성에는 수학적 비율과 정수의 반복이 일관되게 적용된다. 이는 단순한 미적 구성이나 구조적 안정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주의 질서와 신의 이성적 구조를 건축으로 구현하려는 시도였다. 중세의 철학자들과 건축가들은 '하나님은 수를 통해 질서를 부여하신다'고 믿었고, 이는 성당의 기둥 개수, 창문의 배치, 아치의 반복, 정면의 모듈 구성 등 모든 요소에 체계적으로 반영되었다.

 

예를 들어, 숫자 '3'은 삼위일체를 상징하며, 3개의 입구, 3개의 아치, 3층 구조가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숫자 '4'는 세상의 질서(4계절, 4원소, 4방위)를 상징하며, 건물의 기단 구조나 창문의 수에 자주 등장한다. 숫자 '7'은 창조와 완성의 수로서, 성당 안의 예배 순서, 촛대의 수, 의례의 단계 등에 자주 반영된다. '12'는 사도와 지파의 수로서, 종종 제단 주위를 둘러싼 기둥의 수나 종탑의 수로 표현된다.

 

이처럼 숫자는 성당 건축 안에서 단지 양적 개념이 아니라 질서와 완성, 신과 인간의 관계를 구조적으로 표현하는 도구로 활용되었다. 성당은 하나의 수학적 우주로서, 인간이 그 안에서 신적 질서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상징적 공간이었던 것이다.

 

맺음말: 돌과 빛, 수와 구조로 짜여진 신앙의 지도

유럽의 성당 건축은 단순히 거대한 돌의 집합체가 아니다. 그것은 하늘을 향한 인간의 갈망, 구속의 서사와 구원의 약속, 신의 현현과 심판, 그리고 우주의 질서에 대한 믿음을 공간화한 예술이자 신학이며, 철학의 총체다. 첨탑의 상승은 영혼의 여정을, 십자형 평면은 신학적 이야기를, 빛은 계시를, 문과 조각은 인간의 도덕적 위치를, 숫자는 신의 법칙을 표현한다.

 

이 상징들은 시대를 초월하여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어떤 구조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그 공간은 어떤 신념과 가치를 반영하는가? 유럽의 성당들은 지금도 말없이 서 있으면서, 인간 존재의 궁극적 의미를 묻고 있다. 성당에 새겨진 상징들은 단지 과거의 신앙 체계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인간 사유의 흔적이며, 우리가 돌이켜야 할 정신의 좌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