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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

고대 로마 건축에서 배워야 할 5가지 교훈

고대 로마 제국의 건축은 단순한 기술력의 산물을 넘어서, 사회 철학과 공동체 가치, 미학적 이상이 반영된 총체적 결과물이었다. 포룸, 수도교, 원형극장, 목욕탕, 신전까지. 이들은 단지 돌로 만든 구조물이 아니라, 도시와 인간이 어떻게 관계 맺고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로마인들의 해답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기능하고 있는 고대 로마 건축의 원리들은, 오늘날의 도시계획과 건축 디자인에 유효한 통찰을 제공한다. 본 글에서는 로마 건축에서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 할 다섯 가지 교훈을 자세히 살펴본다.

 

고대 로마 건축에서 배워야 할 5가지 교훈

 

1. 공공성을 중심에 둔 도시 구조 설계

고대 로마 건축에서 가장 핵심적인 특징 중 하나는공공성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헌신이었다. 로마인들은 도시를 단지 거주 공간으로만 보지 않았다. 도시란 공적 담론이 펼쳐지고, 시민 간의 상호작용이 일어나며, 정치와 종교, 경제, 여가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시민 공동체의 구현 공간이어야 한다고 보았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포룸(Forum)**이다. 포룸은 단순한 광장이 아니었다. 이곳에서는 법정이 열리고, 상업이 이루어졌으며, 공공 연설과 종교 의식, 심지어 군사적 의례도 펼쳐졌다. 따라서 포룸은 모든 시민이 참여 가능한 열린 공간으로 기능하며, 도시의 정치적 활력을 상징했다. 오늘날 우리가시민광장이라는 개념을 통해 민주주의의 장을 연상하게 된 배경에는, 이 고대 로마적 전통이 깊이 깔려 있다.

 

뿐만 아니라 **목욕탕(Thermae)**도 로마인의 공공성 철학을 잘 보여주는 공간이다. 목욕은 단순히 청결을 위한 행위가 아니라, 일종의 사회적 의례였다. 온탕, 냉탕, 사우나, 운동장, 독서실까지 갖춘 목욕탕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계층의 시민이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되었으며, 사회적 교류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이는 건축이 단지 기능적 공간이 아닌, 사회적 연결을 만들어내는 매개체임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로마인들이 포룸과 목욕탕을 중심으로 건축한 도시는 명확한 철학 위에 구축되었다. 도시는 국가 권력의 상징이면서도, 동시에 시민을 위한 살기 좋은 환경이어야 한다는 인식이었다. 현대 도시가 고밀도 개발과 사적 이익 중심의 설계로 인해 공공 공간의 질이 훼손되는 현실에서, 로마의 공공 중심 건축 철학은 다시금 주목받을 가치가 있다. 시민 모두에게 열려 있고, 함께 머무를 수 있으며,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의 설계는 민주적 사회의 필수 조건이다.

 

2. 기술과 재료의 창의적 활용

고대 로마 건축은 단순히 튼튼한 구조물을 만드는 기술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들은 당대의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건축형식을 창조하기 위해 재료와 공법의 조합에 있어 탁월한 창의성을 발휘했다. 그 중 가장 혁신적인 성취는 단연 **로마 콘크리트(Opus caementicium)**의 개발이었다.

 

로마 콘크리트는 현대의 포틀랜드 시멘트 기반 콘크리트와는 다른 조성으로, 화산재(pozzolana), 석회, , 자갈을 혼합하여 만들어졌다. 특히 해수에 노출되어도 경화가 지속되는 성질 덕분에 해안가 항구, 교량, 방파제 등 다양한 장소에 응용될 수 있었다. 실제로 나폴리만에 있는 포르투스 율리우스 항구의 해상 구조물은 오늘날에도 원형을 일부 보존하고 있을 만큼 내구성이 뛰어났다.

 

이러한 재료적 혁신은 **아치(Arch), 보울트(Vault), (Dome)**이라는 구조 기법을 가능하게 했다. 예컨대 판테온의 돔은 현재까지도 전통 콘크리트를 사용한 구조물 중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무게 분산을 고려한 층별 콘크리트 재료의 밀도 차이, 오큘루스(천정의 원형 개구부)를 통한 하중 경감 등은 건축 구조공학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로마인들은 단순히 새로운 재료를 개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각기 다른 재료의 조합과 배치를 통해 구조적 안정성과 미적 효과를 동시에 달성했다. 외벽은 대리석으로 마감해 미감을 높였고, 내부 구조는 콘크리트를 중심으로 구성해 비용과 시공 효율을 극대화했다.

 

현대 건축이 직면한 핵심 과제 중 하나는 바로 지속가능성과 기술 융합이다. 고대 로마의 사례는 단지 오래가는 재료를 사용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원의 경제성, 시공의 효율성, 구조적 창의성을 결합해야 진정한 혁신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과학적 사고와 미학적 감각, 사회적 목적을 동시에 고려한 로마 건축의 태도는 오늘날 기술 중심의 도시 건축이 반드시 복원해야 할 가치다.

 

3. 기능성과 미학의 조화

로마 건축에서 배워야 할 세 번째 교훈은 바로 기능성과 미학의 완벽한 균형이다. 현대 건축에서는 기능성과 예술성이 자주 충돌하는 경향이 있지만, 로마는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양립 가능한 가치로 여겼고, 이를 실제 건축물에서 구현해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콜로세움(Colosseum)**이다. 콜로세움은 약 5만 명 이상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초대형 원형극장이었지만, 단순히 크기만 자랑하는 구조물이 아니었다. 건축물 외관은 도릭, 이오니아, 코린트라는 세 가지 고전 건축 기둥 양식을 층마다 배치해 시각적 질서를 형성했고, 외부 입면의 아치 구조는 심미성과 구조 안정성을 동시에 충족했다.

 

로마의 수도교(aqueduct)도 마찬가지다. 기능적으로는 중력과 경사를 활용한 정교한 수로 시스템이었지만, 건축적 측면에서는 반복적인 아치 구조를 통해 시각적 리듬감을 주었고, 자연 경관과의 조화를 고려한 위치 선정 역시 인상 깊다. **폰 뒤 가르(Pont du Gard)**는 그 대표적 사례로,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이 수로교는 오늘날에도 관광 명소로 남아 있을 만큼 구조적 아름다움이 뛰어나다.

 

이러한 사례는 로마인들이 단지 편리한 건축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라, 건축물이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고 공간 경험을 고양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철학을 가졌음을 보여준다. 미는 기능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 기능을 극대화하고 인간 경험을 풍요롭게 하는 요소였다. 이러한 통합적 접근은 현대 도시 설계와 공공건축, 교량, 철도역 등 인프라 설계에 시사점을 제공한다.

 

4. 장기적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려

로마 건축의 위대함은 단지 당시의 기술적 정점에 있지 않다. 더 깊은 차원에서는 시간을 고려한 설계 철학, 즉 구조물의 수명과 변화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 장기적 사고가 깔려 있었다. 이는 오늘날 지속가능 건축(sustainable architecture)의 핵심 개념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먼저, 로마 건축은 기본적으로 **재사용과 전용(adaptive reuse)**을 고려한 구조로 설계되었다. 대표적인 예가 **판테온(Pantheon)**이다. 원래는 모든 신을 위한 신전이었지만, 기독교 시대 이후에는 성당으로, 나아가 왕실 무덤으로 활용되었다. 구조적으로도 큰 개조 없이 기능을 전환할 수 있었던 것은 설계 단계부터 중심 공간의 유연성과 개방성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또한 로마의 도로망과 도시 구조는 유지보수와 확장을 고려해 모듈화된 체계로 설계되었다. 포장 도로는 일정한 간격으로 드레인과 경사 처리가 되어 있어 배수에 용이했고, 도로 폭도 마차의 왕복 통행을 기준으로 표준화되어 있었다. 이러한 통일성과 일관성은 후대 도시들이 로마식 구조를 쉽게 차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오늘날 우리는 흔히 구조물의 수명을 30, 50년으로 설정한 채 건축하지만, 로마는 건축을 수백 년에 걸친 사회적 자산으로 보았다. 이처럼 긴 호흡으로 접근한 건축은 단기 이익보다 공동체의 지속적 복지와 문화적 유산을 중시하는 철학에 기반한 것이었다. 진정한 지속 가능성이란 단지 친환경 자재의 사용에 그치지 않으며, 공간의 수명과 사회적 전환을 고려한 총체적 설계를 통해 구현될 수 있음을 로마 건축은 말해준다.

 

5. 인간 중심의 스케일과 체험 디자인

마지막으로 주목해야 할 교훈은 인간 중심의 공간 스케일과 체험을 중시한 설계 철학이다. 로마 건축은 거대하면서도, 그 내부 공간은 언제나 인간의 시선과 행동을 중심으로 계획되었다. 이 점은 현대의 기계적 대형 구조물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점이다.

 

예컨대 포룸의 기둥 배치, 거리의 너비, 광장의 비율 등은 사람의 걸음걸이, 시야각, 군중의 이동 동선을 정교하게 분석해 설계되었다. 원형극장은 관람객이 무리 없이 이동할 수 있도록 수십 개의 입구와 경사로를 두었으며, 계단의 높이와 좌석의 경사는 시야 확보를 최적화하는 방향으로 정리되었다. 이는 건축이 단순한 구조가 아니라, 인간의 경험을 설계하는 공간적 장치임을 잘 보여준다.

 

또한, 도시 곳곳에는 벤치, 수로, 분수, 식수대 등 사소해 보이지만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요소들이 촘촘히 배치되었다. 이는 현대 도시에서 흔히 간과되는비건축적 설계 요소들이 사실상 가장 인간적인 공간 경험을 만들어준다는 점을 시사한다.

 

로마의 거리에는 군사적 질서 외에도 걷는 사람을 위한 배려가 있었고, 광장은 토론과 만남의 장소가 되었으며, 그 중심에는 항상 인간이 있었다. 이러한 인간 중심적 사고는 오늘날의 대형 쇼핑몰, 교통 허브, 고층 아파트 단지에서도 반드시 반영되어야 할 필수 철학이다.

 

결론: 과거의 지혜로 미래를 짓다

고대 로마 건축은 단지 오래된 유산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날의 기술, 철학, 디자인, 도시계획이 반드시 돌아봐야 할 원형적 모델이다. 로마는 우리에게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건축이 무엇인지를 가르쳤다. 그들이 사용한 콘크리트나 아치 기술은 모방할 수 있지만, 그 바탕에 흐르는 공공성, 지속성, 미학, 인간 중심 사고는 단지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되살려야 할 가치다.

 

진정한 건축은 공간의 기능을 넘어서 삶의 철학을 담는다. 고대 로마는 그것을 알고 있었고, 오늘의 우리는 그것을 다시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