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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

프랑스 고성의 창문 디자인에 담긴 상징성

서론 – 돌과 빛 사이, 창문은 말하고 있었다

프랑스의 고성(古城)은 단지 중세 귀족의 거주지가 아니었다. 그곳은 권력의 상징이자, 전쟁과 방어의 요새였으며 동시에 건축을 통해 권위와 신념, 미적 감각을 표현한 공간이었다. 특히 고성에 설치된 창문은 그 형태와 크기, 배치와 장식에 따라 사회적 의미와 정신적 상징성을 담아냈다.

 

중세 유럽의 건축은 단순히 기능을 위한 구조물이 아니었다. 당대 프랑스 건축가들은 벽과 기둥, 천장, 문, 그리고 특히 창문이라는 건축 요소 하나에도 철학과 권위를 담았다. 프랑스의 고성에서 창문은 빛을 들이는 통로이자, 계급과 신분, 신앙과 미학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구조물이었다.

 

이 글에서는 프랑스 고성의 창문 디자인이 지닌 구조적 특징과 장식 요소를 살펴보고, 그 안에 담긴 상징적 의미와 사회적 메시지를 건축적·문화적으로 해석해 본다.

프랑스 고성의 창문 디자인에 담긴 상징성

1. 방어와 통제의 창 – 초기 고성의 기능 중심 창문

중세 초기의 프랑스 고성은 철저히 방어 기능을 중심으로 설계된 요새적 공간이었다. 당대 프랑스 건축가들은 외벽의 창문을 작고 좁게 만들었으며, 이는 외부 침입을 방어하고 내부를 보호하기 위한 필연적인 구조 선택이었다. 초기의 고성 창문은 화살구멍 형태의 수직 슬릿(Window slit)으로 제작되었다. 이는 내부에서 외부를 향해 화살이나 투석을 발사할 수 있도록 설계된 형태로, 채광보다는 전투 효율성을 우선한 디자인이었다.

 

이처럼 방어 건축으로서의 창문은 건축물 전체에 ‘요새성’을 강조했고, 외부 시선 차단과 내부 통제의 상징으로 기능했다.
중세시대 프랑스 건축가들은 창을 통해 ‘빛’을 들이기보다는, ‘권력의 단절’을 시각적으로 구성한 것이다.

 

2. 고딕 양식의 도래 – 빛과 신의 현현으로서의 창

12세기 이후, 고딕 양식이 프랑스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성곽과 고성의 건축 개념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성당 건축에서 출발한 고딕 창문의 원리는 귀족 저택과 고성의 구조에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고딕 시대의 성 창문은 뾰족아치를 기본으로 하며, 세분화된 창살과 스테인드글라스 장식이 결합되었다. 이는 단순한 채광 기능을 넘어서, 빛을 통한 신의 상징적 현현을 공간 안에 구현하려는 시도였다. 프랑스 고성의 주요 거실, 연회장, 예배실에는 이러한 고딕 창문이 도입되었고, 이를 통해 귀족 가문의 신앙심과 고결함, 예술적 안목이 시각적으로 드러났다.


빛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권위와 은총을 내리는 상징으로 해석되었으며, 창문은 그 빛을 통과시키는 성스러운 경계였다.

 

3. 로제 창(Rose Window)과 상징체계의 시각화

프랑스 고딕 건축의 대표적 창문 형식 중 하나가 로제 창(Rose Window)이다. 이는 보통 원형의 거대한 창문으로, 복잡한 기하학 패턴과 중심을 향한 방사형 구성을 가지고 있으며, 주로 성당에 사용되었다.

 

하지만 일부 대형 고성이나 성 안의 예배당, 혹은 귀족 전용 채플에도 축소형 로제 창이 설치되었다. 당대 프랑스 건축가들은 로제 창을 통해 중앙 집중 구조 속의 질서, 영적 상승, 중심성의 철학을 표현하였다. 로제 창의 문양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시간의 순환, 신의 완전함, 창조의 논리를 상징하는 시각 언어였다.


프랑스 귀족 사회는 이를 통해 자신들의 가문이 신적 질서에 속해 있다는 메시지를 건축을 통해 전달하려 했고, 그 의도는 정교한 창문 디자인으로 구현되었다.

 

4. 상징으로서의 창살 – 사회적 위계의 시각적 표현

프랑스 고성의 창문에는 정교한 창살 장식이 결합되며, 이는 단순한 구조 보강을 넘어 계층적 상징성을 드러내는 장치로 사용되었다. 당대 프랑스 건축가들은 창살의 복잡성과 패턴의 정교함을 거주자의 신분에 따라 다르게 설계하였다.

 

예를 들어, 영주의 개인 방이나 접견실의 창은 복층 구조의 복잡한 창살과 섬세한 곡선형 조각이 특징이었으며, 하인들의 거주 공간이나 보조실은 단순한 수직 패턴의 기하학적 창살만을 사용하였다. 이는 건축을 통해 ‘누가 어디에 사는지’, ‘누가 더 높은 존재인지’를 시각적으로 구분하려는 시도였으며, 공간의 위계 구조를 드러내는 상징적 질서는 창문을 통해 실현된 것이었다.

 

또한 창살은 빛의 투과 각도와 그림자 흐름까지 계산하여 설계되었으며, 낮 시간 동안 내부 분위기를 변화시키는 요소로도 활용되었다. 이는 단순한 미학이 아니라, ‘빛의 조절을 통한 권위의 연출’이라는 연극적 건축기법이라 할 수 있다.

 

5. 르네상스 이후의 창 – 개방성과 세속성의 상징

15세기 이후 르네상스 건축이 유입되면서 프랑스 고성의 창문 디자인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그때부터 프랑스 건축가들은 창문을 기능성과 장식성, 그리고 인문주의적 미학을 표현하는 통로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르네상스 고성의 창은 사각형 또는 반원 아치 형태로 구성되며, 좌우 대칭적 배치와 함께 정제된 석조 프레임, 인체 비례를 반영한 구조가 특징이다. 이는 중세의 신비주의적 창에서 벗어나, 인간 중심의 세속적 건축 미학으로 전환된 결과였다.

 

창은 더 이상 ‘위협으로부터 막는 장치’가 아니라, 자연과 예술, 인간의 삶을 받아들이는 개방성의 상징으로 탈바꿈하였다. 이러한 창 디자인은 프랑스 왕실의 루아르 계곡 고성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며, 대표적으로 샹보르 성(Château de Chambord), 블루아 성(Château de Blois) 등이 그러한 변화를 보여준다.

 

결론 – 창문은 단순한 틀이 아니라, 중세의 눈이었다

프랑스 고성의 창문은 단지 외부의 풍경을 바라보는 투시창이 아니었다. 그것은 중세 사회의 신분 질서, 신에 대한 믿음, 건축적 기술, 미학적 감각이 모두 집약된 문화적 상징 장치였다. 당대 프랑스 건축가들은 창문을 통해 공간을 조절하고, 빛을 설계하고, 권위를 구성했다. 그 창문을 통해 들어온 것은 단순한 햇살이 아니라, 신성, 질서, 권력, 그리고 예술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프랑스 고성을 바라보며 감탄하는 이유는 그 창문 너머에 담긴 건축적 사유와 시대적 메시지를 직감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고성의 창문은 말하고 있다. 그 시대 사람들의 믿음, 욕망, 두려움, 이상이 돌과 유리, 빛과 그림자를 통해 어떻게 형상화되었는지를.